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쉴레이만 1세 (문단 편집) ===== 로도스 공방전 ===== >왕 중의 왕, 군주 중의 군주 동로마와 트레비존드의 가장 존귀한 황제,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시리아, 이집트의 강력한 제왕, 유럽과 아시아의 최고 지배자, 메카와 알레포의 통치자, 예루살렘의 왕, 모든 바다의 지배자인 술탄 쉴레이만이 로도스 섬의 구호 기사단장 필리프 드릴라당에게 인사를 전하노라. > >로도스의 신임 기사단장이 된 것을 축하한다. 섬을 부강하게 만들어 전임자들보다 더 큰 영예를 얻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짐도 그대의 호의를 기대하는 바이다. 그렇게 하면 그대는 짐의 소중한 벗이 되어 짐과 더불어 환희를 누리게 될 것이다. 짐은 페르시아, 예루살렘, 아라비아, 이집트를 정복한 부황의 뒤를 이어 지난 가을에 난공불락의 요새 도시인 베오그라드를 정복했노라. 그후 이교도들을 공격하자 그들은 감히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하였으므로 짐은 방비가 잘된 다수의 도시들을 거저 얻다시피 하고 그곳 주민들을 대부분 불태우거나 칼로 베어 죽이고 나머지는 노예로 만들었노라. 그런 다음 승리를 거둔 짐의 군대는 겨울 숙영지로 보내고 짐은 콘스탄티노플의 궁정으로 개선하려는 바다. >---- >1521년 쉴레이만 대제가 [[구호기사단|구호기사단장]] 자리에 오른 릴라당에게 보낸 사실상의 [[선전포고]]문. 그리고 1년이 지나자 이번엔 에게 해의 요충지인 로도스 섬을 공격했다. 이 또한 부황이 공략하려다 미처 이루지 못하고 사망한 곳으로, [[구호기사단|성 요한 구호기사단]]이 긴 세월을 장악하며 요새화시킨 상태였다. 구호기사단은 해상 교역의 요충지인 이곳에서 오스만 제국이 [[아라비아]] 반도와 교류하는 것을 번번이 차단하고는 했다. 쉴레이만은 반년에 걸친 무자비한 공격 끝에, 결국 큰 피해를 기록하면서까지 1522년 이 난공불락의 섬을 정복했다. 이제 오스만이 아라비아로 세력을 뻗는 것에 저항할 세력은 없었다. 이후 로도스 섬에서 쫓겨난 성 요한 구호기사단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아량으로 [[몰타]] 섬에 이주해 정착했다. 1523년 6월에는 [[이브라힘 파샤]]가 대재상으로 임명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